메시지 > 주일 강단 메시지

본문 바로가기
HOME > 메시지 > 주일 강단 메시지
주일강단메시지

하나님은 내가 이기기를 원하신다.(God Wants Me to Overcome)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4-28 08:41 조회183회 댓글0건
일시 : 2024-04-28 본문 : 계(Rev.) 3:14-22 설교자 : 여주상목사 (Rev. John Yeo)

본문

영상시청 (아래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Watch the video (click the link below)

https://youtu.be/Zy2J3abxDOE 

 

하나님은 내가 이기기를 원하신다. 3:14-22

하나님은 우리가 이기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무엇과 싸우는 것이냐면 나 자신과 싸워 이기는 것이다. 예수님은 믿지만 여전히 세상을 의지하고 세상을 향해 가고 싶어하는 나의 자아와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면 우리는 이길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이기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답을 믿고, 받아들이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신앙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나 자신과 싸워 이길수 있다. 우리 인생에는 수많은 어려움과 문제가 다가온다. 이 모든 문제의 답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이것을 붙들면 우리는 이길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라고 고난과 문제를 허용하시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7개의 초대교회가 등장을 하는데 그 중에 유일하게 오로지 책망만 받는 교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이다. 분명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하나님께 책망만 받았다. 왜 너희들은 그렇게 미지근하냐? 왜 너희들은 나를 의지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복음이 있지만 복음에 오직이 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의 육신적인 부요함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육신적인 부요함 때문에 눈이 먼 것이다. 그래서 오로지 그것 밖에 보이지 않으니 아무리 영적인 것이 있다 해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사용하는 도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책망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19) 하나님은 그들이 이기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21절에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보좌 옆에 앉게 해주겠다, 최고의 영광스러운 축복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이기기를 원하신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끝내 이기고 하나님께 칭찬 받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가?

 

1.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

1) 순금은 귀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금을 불로 연단하여 잘 정제하지 않으면 그 금 안에는 많은 불순물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불순물 때문에 그 금은 순금이 아니고,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2)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복음이 금과 같이 귀한 것이다. 왜냐하면 금으로 모든 물건을 바꿀수 있는 것처럼 복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복음이 불순물과 섞이면 잘못된 복음이 된다. 그래서 마치 예수 믿으면 만병통치가 되는 줄 안다. 만병통치가 아니라 근본문제 해결이다. 근본문제가 해결이 되어지면 모든 병은 치유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3) 순전한 복음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 불순물이 다 빠져야 한다. 그러나 사단은 문제와 어려움이라는 불순물을 우리 삶 속에 계속 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문제가 있어도 상관없이 오직 복음으로 이길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연단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4)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과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연단으로 생각하며 오직 언약을 믿으며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세상에 속지 않고 승리할수 있게 된다.

 

2. 흰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1)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나서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자신들이 벌거벗었음을 발견한 것이다. 하나님이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의 다른 것을 구원으로 여기는 것이다. 내가 나를 바라보면 나는 연약하고 부족하고 아무것도 없는 수치스러운 인간이다.

2)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흰옷을 입히신다. 흰옷은 어린양 예수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입는 옷이다.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수치, 죄악을 가리셨다.

3) 나에게 돈이 있고 능력이 있다면 그것으로 흰옷을 사야 한다. 거룩해지는 길을 택하고 그것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세계복음화 위해 살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벌거벗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4) 이 말은 라오디게아 교회 사람들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부유, 행복, 편안함이었던 것이다. 이런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위해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세상에 물들지 말고 거룩하게 살아라. 그럴 때 우리들의 삶은 세상의 일과 상관없이 승리하는 삶이 될 것이다.

 

3.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라.

1) 라오디게아지역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바로 안약이었다. 전 세계에서 안약을 사러 그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정작 자신들의 눈은 영적으로 멀어 있었다.

2) 대표적인 복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과연 그 복음을 누리고 사용하고 증인되고 있는가? 만일 우리가 이 복음을 누리지 못한다면 둘 중 하나이다. 복음을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알지 못하고 있든지, 아니면 복음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내 삶에 실제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3) 무엇이 내 눈을 바꿀 것인가?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눈을 바꿔야 한다. 이 말씀에 순종하고 따라가면서 매일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들은 비로소 영적인 눈이 열릴 것이다.

4) 지금 내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내가 따라가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나의 능력과 나의 재력을 바라보지 말고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다. 내 눈에 이 약을 바르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이기는 자가 될 줄로 믿는다.

 

4. 결론: 개인화

결론은 개인화이다. 아무리 복음이 답이면 뭐하겠는가? 개인화가 되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약도 먹어야 효과가 나타난다. 개인화는 내가 믿는 복음을 실제로 내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복음은 실제로 내가 그리스도를 주인이라고 고백할 때 체험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계시록 220절의 말씀은 아이러니하게도 불신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다. 복음이 있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여전히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두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하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다. “내가 지금 너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나의 음성을 듣고 너의 문을 열어주겠니? 그러면 내가 너에게 들어가 너와 더불어 먹고 싶구나도저히 하나님이 주신 일이라고 믿을수 없는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도저히 아무것도 할수 없는 그 절망속에서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달라고, 나는 주님을 따라가겠다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것은 복음을 아는 사람만이 할수 있지 불신자는 도저히 그렇게 못하는 것이다. 내가 이 주님을 지금 나의 문제 한 가운데 초청할 때 하나님은 기꺼이 그 안에 오셔서 그 문제의 주인되어주실 것이다. 그럴 때 우리들은 이기는자, 승리하는 자, 정복하는 자가 될 줄로 믿는다. 지난 주 본부강단말씀에 망대를 바꿔야 된다는 말씀이 나왔는데 너무나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내가 어려운 것은 나의 과거의 나의 삶의 모든 틀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틀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이기고 정복하기를 원하신다. 사단의 틀을 깨서 부수고 나의 한계를 정복하면서 결국 하나님 앞에 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 이기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앞에 내 마음의 문을 열겠노라고, 복음으로 살겠노라고 응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